김훈 공터에서 본문

김훈의 신작 장편 '공터에서'를 읽고
그는 아버지의 삶에 대한 추억으로 소설 속 인물인 아버지 마동수를 만들어 냈다.
상하이에서 아나키스트 운동에 참여해 청춘을 보낸 아버지 마동수. 둘째 아들 마차세가 회상하는 아버지는 삶의 중심에 들어서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만을 겉돌고 있다.
실제 소설가 김훈의 부친은 무협 소설 '비호'의 작가 김광주 이다.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김광주는 청년 시절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으며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했지만, 늘 울분을 삭이지 못해 식솔을 챙기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떠돌았다. 그런 의미로 김광주-김훈, 마동수-마차세 부자는 마치 판박이 같다.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사건과 여러 세대가 얽킨 이 소설에서 아버지 마동수는 영웅처럼 살고자 했지만 실패한 세대를 대표했고, 장남 마장세는 아버지 세대에 반항한 반영웅적 삶을 추구한다.
차남 마차세는 현실에 순응하며 영웅도 반영웅도 아닌 비영웅의 길을 선택한 것이 책 제목인 '공터에서'처럼 그 시대의 불완전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었지 싶다.
소설의 배경은 일제가 침략하는 상해시내, 일본 제국주의 항공기가 무차별 폭격하는 상해이다.
작전판이 즐비한 동경 맥아더 사령부, 중공군에 포위된 중부 산악지구, 인민군 치하의 서울, 수많은 드라마가 있는 흥남부두, 압록강 전선과 피난지 부산, 그리고 월맹 빨치산과 대치한 다낭의 밀립, 남태평양에 있는 미크로네시아와 추크섬, 팔라우섬이 그 곳들이다.
그런데 줄거리는 너무 평범하고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시대사에 엉긴 마차세의 가족사일 뿐이다.
마동수는 일제강점기에 방향을 못 잡고 오락가락하다가 쓸쓸하고 암울한 노년으로 죽어갔던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이다.
이도순 역시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죽어야 하는 우리 윗세대 어머니이다.
흥남부두에서 어린 딸과 헤어져 마지못해 부산 피난지에서 새 삶을 꾸리고, 마장세는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 삼촌으로 월남전에서 동료를 사살한 대가로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한국땅을 떠나 살게된다.
마차세는 취업하기 어려운 우리의 모습으로 가족의 애경사와 삶의 무게를 지며 시대에 순응하는 성실한 나이다.
아나키스트 하춘파는 독립 운동가였는지 모른다. 모든 독립운동가가 그렇듯이 하춘파는 해방된 땅에서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가끔 옛 동지의 아들을 찾아다니며 용돈을 뜯는 하찮은 노인이 되었다.
"별것 아니라고 스스로 달래면서 모두 버리고 싶었지만 마침내 버려지지 않아서 연필을 쥐고 쓸 수밖에 없었다." -작가후기-
작가의 마음 깊은 곳에 남은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이 소멸하길 바라며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