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권투선수로 성공하기까지의 성장담으로 틀을 잡고 있지만 도선우의 스파링은 불공정한 이 사회의 질서를 강도 높게 비판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소년 장태주가 보육원에서 자라고 성장하면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거침없는 말들은 개인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문제들 조차도 사실은 사회 구조적 문제이며 그 틀 안에서 근원을 찾아 내어 우리에게 그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질서라는 건 한번 만들어지면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질서를 바꾸려면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무턱대고 덤볐다간 자기 인생만 망치게 된다고. 이런 단언들을 깨부수기 위한 장태주만의 성장기. 도선우의 스파링을 읽는 내내 가슴 속이 답답함을 느꼈다. 누군가의 편의에 의해 설계된 이 사회를 벗어나 자신만의 규칙으로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
만족도를 재미에만 둔다면 당연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시작부터 몰입하여 마지막 책장을 넘기기까지 클리어하게 읽어진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으면서 살인의 계획과 사건의 흐름을 살인해야하는 목적과 과정에 포커스를 맞춰 끌어가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아주 스피디하다. 누가 누구를 단죄한다는 것. 그 영역을 침범해야 했던 릴리. 불행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들은 넘쳐 날 텐데.... 어찌되었건 미성년자 성추행, 양다리 연애, 불륜 등이 이야기 속 사망자들이 죽여 마땅한 이유였다. 그런데 죽여 마땅하다고 살인을 했던 주인공(릴리)은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반전에서 오는 여운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또한 스토리 막바지에 수감소에서 릴리가 아버지..
시간이 멈춰버린 뜨거운 여름 오후, 소녀의 오해가 불러온 젊은 연인들의 비극, 그리고 이를 되돌리려는 한 소설가의 60년에 걸친 지난한 속죄! 이 한 줄의 문구는 '속죄'를 읽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이기도 한 '속죄'는 부커상 수상작가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이다. 기다림이 아플수록 사랑은 깊어지는,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소설가 지망생인 한 사람의 속죄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엮어 간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영국과 미국에서 10주 이상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머물렀고, 다음해 부커상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소설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비밀을 사랑하며, 글쓰기를 좋아하는 13살 소녀 브리오니가 자신이 보고 판단한 것을 온전한 진실이라고 믿고 행동했다가 친언니 세..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인 '기린의 날개' 일본에서는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어느 늦가을 밤, 도쿄 한복판에 있는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의 남자가 가슴을 칼에 찔린 채 경찰에게 발견된다. '기린의 날개'는 살인사건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을 끈질지게 찾아가는 내용이다. 엄청난 반전과 긴장감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스럽긴 하지만 가가형사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쫓아가면서 진실을 찾는 과정은 흥미로웠던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나올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릴것이다. '죽을 이유없는 피해자'와 '죽일 이유없는 유력한 용의자' 그리고 '형사 가가가 주목한 또 한 명의 사람' 문제를 풀때 막히면 처음으로 돌..
김훈의 신작 장편 '공터에서'를 읽고 그는 아버지의 삶에 대한 추억으로 소설 속 인물인 아버지 마동수를 만들어 냈다. 상하이에서 아나키스트 운동에 참여해 청춘을 보낸 아버지 마동수. 둘째 아들 마차세가 회상하는 아버지는 삶의 중심에 들어서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만을 겉돌고 있다. 실제 소설가 김훈의 부친은 무협 소설 '비호'의 작가 김광주 이다.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김광주는 청년 시절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으며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했지만, 늘 울분을 삭이지 못해 식솔을 챙기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떠돌았다. 그런 의미로 김광주-김훈, 마동수-마차세 부자는 마치 판박이 같다.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사건과 여러 세대가 얽킨 이 소설에서 아버지 마동수는 영웅처럼 살고자 했지만 실패한 세대를 대표했고, ..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고 오랜만에 참 대단한 책을 만났다.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나는 내가 눈을 뜨고도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마음의 장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이라도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갈수도 있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제대로 볼 수 없어 놓쳐버린 것들을 이제라도 다시 담을 수 있을 것도 같은 생각이 든다. 어느날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마음으로 서로를 확인할 수 있을뿐 눈이 보일 때보다 안 보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더 많이 깨닫고 포용한다.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렸을때 단 한사람, 의사의 아내는 앞이 보임에도 자신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눈이 멀어버린 남편의 곁..
읽고. 노르웨이 작가 사무엘 비외르크의 처녀작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는 비외르크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독자들에게 사랑 받은 소설이다. 소설 속 사건은 '사라진 6살 소녀들의 연이은 죽음'이다. 베타랑 수사관 홀거 뭉크와 뛰어난 직관력을 가진 미아 크뤼거의 재회를 필두로 멈출 것 같지않은 연쇄살인의 수사여행이 시작된다. 6살의 순수하고 예쁜 소녀들. 예쁜 원피스를 입고 나무에 목이 매달린 모습으로 발견된다.'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라는 메시지만 던져진 채로... 잔혹한 살인, 그 속에 내재된 다양한 폭력성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 이 소설은 인물들의 개인사를 슬픔과 공포를 조율해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북유럽 특유의 무심한 듯 냉철한 사회비판의식이 서려 있으면서 작가 특유의 감성이 느..
"여인에게 관직을 제수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찾아오라." 조선 초기 수필 문학의 백미인 성현(成現)의 용재총화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홍천기. 그녀는 도화서의 종8품 관직을 얻은 화사(畵史)였으며, 절세 미녀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유일의 여성 화사 홍천기에 대한 한 줄의 기록이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조선왕조실', '세종실록'의 역사적 사실 위에 한 편의 이야기로 탄생했다. 홍천기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붉은 하늘의 기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 초, 백유화단의 천방지축 열정의 여화공 홍천기는 동짓날 밤,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만나면서 시집 못 간 딸에게 배필 하나만 내려 달라고 기도 드렸다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해 내고, 그가 하늘이 내려 준 자신의 남자라 믿는다. 조선시대 도화원과 사화단에서 ..
도서관에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라는 책이 신간으로 나왔길래 읽었다. 그런데 책의 주제가 사교육에 대한 거라 조금 뜻밖이었다. 제목이 너무 은유적이어서 그랬나? 우리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인 교육에 대한 의견을 소설로 엮은 내용이 '풀꽃도 꽃이다'이다. (이다 이다? ^^) 아이들은 엄마들의 극성에 휘청되다가 부모의 아바타가 되거나, 모든 책임을 정부나 학교, 부모에게 책임전가하며 인생의 주체자임을 망각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대안학교에서 미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가 조정래는 이런 교육현실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이 부모와 사회의 책임이 아니냐고 묻고 있다. 풀꽃도 꽃이다는 단순하고 현실적인 내용이지만 많은 고민거리를 남기는 소설이다. 조정래의 글은 대개 뚜렷한 정신세계를 제시하고..
항간에 이생망이라는 말이 20대들에 많이들 회자된다고 한다. 이번 생 망했다는 뜻이다. 살다보면 이렇듯 낙담 하듯 말할 수 있겠지만 길이라는 게 살아보지 않고선 생기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또한 생이라고 할 수 있다. 부딪쳐 살다보면 어떤 길이던 길을 정하고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러니 길을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생이 망했는지 흥했는지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얼마전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으면서 한동안 넋을 놓고 지낸 적이 있다.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에 황당한 뒷얘기가 감당이 안됐기때문에 생활 그자체가 공이었다. 그러다 눈에 띈 책 한권이 '너를 놓아줄게'라는 스릴러 책이다. 의미없이 읽게 되었지만 읽다보니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어 이 책을 소개한다. 맥킨토시의 '너를 놓아줄게'라는 책은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