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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궐의 '홍천기'를 읽고

레이디수 2017. 3. 20. 19:19

 

"여인에게 관직을 제수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찾아오라."

 

조선 초기 수필 문학의 백미인 성현(成現)의 용재총화<墉齋叢話>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홍천기. 그녀는 도화서의 종8품 관직을 얻은 화사(畵史)였으며, 절세 미녀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유일의 여성 화사 홍천기에 대한 한 줄의 기록이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조선왕조실', '세종실록'의 역사적 사실 위에 한 편의 이야기로 탄생했다.

 

홍천기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붉은 하늘의 기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 초, 백유화단의 천방지축 열정의 여화공 홍천기는 동짓날 밤,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만나면서 시집 못 간 딸에게 배필 하나만 내려 달라고 기도 드렸다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해 내고, 그가 하늘이 내려 준 자신의 남자라 믿는다.

 

조선시대 도화원과 사화단에서 펼쳐지는 화공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그려 낸 이 소설은 백유화단의 홍일점 홍천기와 그녀의 절친들 '개떼둘'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 주며 독자를 즐겁게 만든다.

 

산수화의 대가 안견과 인물화의 대가 최경 등 또 다른 실존 인물들을 보여 주며, 탄탄한 고증으로 역사적 배경을 뒷받침한다. 또한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닌 신비한 존재들의 등장으로 다채롭고 매력적인 인물 군상들을 보여 주며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풍류객 안평대군, 이용!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여 훌륭한 그림과 시라면 사족을 못 쓴다. 흥미롭고 유쾌한 사건을 불러들이는 한량, 지금껏 홍천기만큼 그를 신나게 만드는 사람은 없었다.

 

 

하늘의 무늬를 읽고 해독할 수 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경복궁의 터주신 절세미남 일관, 하람! 홍천기를 만나면서 그의 눈을 둘러싼 붉은 하늘의 기밀이 조금씩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한다.

 

하람의 눈이 되고자 당당히 경복궁에 입성한 백유화단의 여화공 홍천기. 사내 못지않은 대찬 목소리에 호랑이가 먹다가도 뱉어 낼 독기와 고집을 가졌다. 오직 그림만이 전부였던 20년 화공 인생, 하늘에서 떨어진 한 남자를 만나 후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들> <해를 품은 달> <그녀의 맞선보고서> 전작을 능가하진 않지만 믿고 보는 작가라 일독을 권해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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